1화. 빵의 외침 (상)
퇴근길, 진성의 발걸음은 콧노래를 흥얼거릴 정도로 가벼웠다. 오늘 그는 작정하고 동네 빵집들을 순례했다. 바삭한 크루아상, 팥앙금이 듬뿍 든 단팥빵, 겉은 짭짤하고 속은 촉촉한 소금빵, 그리고 부드러운 생크림이 듬뿍 들어간 롤케이크까지. 양손 가득 빵 봉투를 든 그의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내일 아침은 뭘 먹을까? 점심에는 또 어떤 빵을 먹어볼까? 벌써부터 행복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흐음~ 이 빵 냄새… 정말 최고야.”
갓 구워진 빵들의 향긋한 조화는 마치 오케스트라의 선율처럼 황홀했다. 그는 혹시나 빵들이 망가질까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꿈은 소박했지만, 빵에 대한 그의 애정은 그 누구보다 뜨거웠다.

그때였다.
콰앙!
요란한 굉음과 함께 땅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진성은 들고 있던 빵 봉투를 떨어뜨릴 뻔하며 휘청거렸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꺄악! 던전이다!”
“도망쳐!”
혼란에 휩싸인 사람들 사이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거대한 균열이 땅바닥에 드리워졌다. 던전이 터진 것이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거리.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진성은 상황 파악도 제대로 되지 않은 채 인파에 휩쓸렸다. 누군가의 팔에 치이고, 또 다른 누군가의 등에 떠밀렸다. 그의 소중한 빵 봉투들은 속절없이 그의 손에서 멀어져 갔다.
“아… 안 돼!”
그가 외쳤지만, 거대한 혼란 속에서 그의 목소리는 묻혀버렸다. 사람들은 오직 눈앞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진성은 이리저리 떠밀리며 속수무책으로 휩쓸려 다녔다.
마침내 인파의 흐름이 조금 잦아들었을 때, 진성은 간신히 중심을 잡고 멈춰 설 수 있었다. 숨을 헐떡이며 주변을 둘러본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처참한 광경이었다. 여기저기 찢어진 쇼핑백과 나뒹구는 물건들. 그리고… 그의 사랑스러운 빵들의 흔적이었다.
크루아상은 발에 밟혀 납작해졌고, 단팥빵은 터져 팥앙금이 길바닥에 처참하게 흩뿌려져 있었다. 소금빵은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뒹굴고 있었고, 그의 로망이었던 생크림 롤케이크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져 있었다.
“아아… 나의 빵들아…”

진성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빵들의 잔해를 바라보았다. 그의 행복했던 퇴근길은 한순간의 재앙으로 인해 끔찍한 악몽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무릎이라도 꿇고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의 꿈, 빵집 순례의 소중한 시작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리다니.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온 진성은 텅 빈 냉장고 앞을 서성이었다. 그나마 위안이 될 만한 것은 어제 사다 놓은 마지막 소금빵 하나였다. 그는 냉장고 문을 열고 그 마지막 소금빵을 꺼냈다. 축 처진 어깨, 풀 죽은 눈빛. 그는 마지막 남은 빵을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이것마저 없었다면… 정말 끔찍했을 거야.”
그는 마지막 소금빵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음미했다.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풍미가 그의 텅 빈 속을 조금이나마 채워주는 듯했다.
“하아…”
눈물이 맺힌 눈으로 마지막 한입을 베어 무는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따스하고 황홀한 빵의 향기가 진성의 온몸을 감쌌다. 마치 갓 구워져 나온 듯한 생생한 온기가 그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푸른색 창이 떠올랐다.
[전직을 축하합니다. 당신의 직업은 <빵지순례사>입니다.]
[세상의 모든 빵던전을 섭렵하여 강해지십시오. 당신은 빵을 맛있게 먹을 때마다 빵지순례사의 능력을 얻게 됩니다.]
진성은 멍하니 눈앞의 상태창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아직 아까 쏟아버린 빵들의 잔상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새로운 이야기는, 이렇게 황당하고도 기묘하게 시작되고 있었다.
